거기서 뭐 하세요

작가노트 #1

굴뚝이 나를 찾아온 것은 그날이었다. 그가 기네스 신기록을 안고 내려온 날. 그는 408일 만에 겨우 땅을 밟았으나, 곧바로 유치장으로 끌려가던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기자들이 몰려와 소감을 물었다.

“408일의 기록이 하늘을 견뎌야 할 누군가에게 어떤 기준이 될까 두렵다.”

기막힌 질문에도 끝끝내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고, 그런 어려움을 겪고도 마지막 순간까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누군가를 걱정하던 그의 한 마디에 나는 오래 뒤척였다.

구미에 갔다. 한동안 굴뚝을 올려다보았다. 굴뚝의 폭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도너츠 형태로 가운데가 뚫렸다는데, 잠은 어떻게 잤을까? ‘바람 때문에 굴뚝이 흔들려 서 있기 어렵다.’ ‘매일 굴뚝에서 떨어지는 꿈을 꾼다.’ ‘태풍이 와 몸을 밧줄로 묶고 잤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그의 일기 속 고공농성은 투쟁보다 고행에 가까웠다. 

저 위에서 유한한 존재가 무한한 싸움을 시작했다. 끝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고독한 일이었을까? 부조리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 어떤 이들은 그곳을 떠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진흙탕 싸움을 피한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갈등 속에 남는다. 기울어진 운동장인 것을 알면서도 무언가를 희망할 용기는 어디서 솟는 것일까?

그가 내려온 지 1년 후, 그 굴뚝이 폭발했다. 공장 해체 과정 중 발생한 사고였다. 해체라고? 결국 문을 닫았단 말인가? 굴뚝도 그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견딘 408일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단 말인가?! 

헛헛한 마음으로 돌아오던 길에 옥천 IC가 보였다. 문득 IC 근처에서 있었던 고공농성이 떠올라 방향을 틀었다. 한데 아무리 찾아봐도 광고탑이 보이지 않았다. 동네 분께 여쭸더니, 다시 고공농성을 못하게 곧바로 없애버렸다고 했다. 어쩐지 씁쓸했다.

화려한 날들만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러 없애는 사람이 있다면, 구태여 기록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2000년 이후 고공농성이 일어났던 130여 곳의 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대부분 사라졌지만, 아직 남아있는 곳도 있었다. 고공농성자들이 올랐던 산업구조물들은 뜻밖에도 꽤 다양했다. 직접 마주하니 일말의 미학적 허세도 없이 필요한 최소한의 구조만으로 되어 있는 수직의 구조물들이, 노동자들과 퍽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남아있는 곳들을 차근차근 기록해 나갔다. 그것은 평범한 산업구조물이었지만,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선택한 마지막 장소였다. 그들은 구조물이 흔들리면 같이 흔들렸고, 구조물이 달아오르면 같이 뜨거워졌다. 마치 그 구조물의 일부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의 시간이 깃들고 염원이 서린 그곳은 이미 단순한 산업구조물일 수만은 없었다. 

전국을 다니며 그들의 지난한 사정을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숨쉬기가 어려워 바다를 보러 갔다. 바다 앞에 서니 하늘이 보였다. 무심하고 아름다운. 고공농성자들에게 매일매일 건넸어야 했던 말, 그들을 등 떠민 자본에, 국민보다 자본을 비호했던 국가에 묻고 또 물었어야 했던 그 질문이 하늘을 향했다. 

거기서 뭐 하세요?!

때늦은 외침 속에서 불현듯 깨달았다. 그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고공에 올랐으나, 본질적으로는 모두 같은 싸움을 했다는 것을. 그들은 “당신은 이런 대접을 받아도 싼 가치 없는 인간”이라고 다그치는 자본의 압력에 굴복하는 대신 존재를 걸고 싸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거대한 자본에 맞선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이었을까? 

나는 그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알지 못한다. 저 바다의 깊이를 알지 못하듯 그들의 슬픔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체념하는 대신 변화를, 더 나은 세상을 꿈꿨던 그들이 그토록 오래 높고 외롭고 쓸쓸해야 했던 이유는, 세상의 거대한 잡음 때문에 우리가 마땅히 들어야만 했던 소리를 듣지 못한 탓은 아니었을까? 
 
고공농성의 장소들에서 먼저 공장의 소음이나 도시의 잡음을 닦아냈다. 오염되거나 닳고 닳아 의미가 퇴색된 말들도 덜어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맺힌 산업구조물들을 시야의 끝, 그래서 세상의 끄트머리처럼 보이는 저 수평선 위로 옮겨 왔다. 수평선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착시이고 환영일 뿐 그곳은 세상의 끝이 아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수평선 위에 굴뚝을 ‘우뚝’ 세웠다. 현대인을 위한 토템처럼 우뚝. 세상은 그들을 약자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들을 초인으로 여기는 까닭이다. 초인적 인내력으로 세계와 독대한 단독자. 백마 대신 굴뚝을 타고 온 초인.

작가노트 #2

생은 선물이라는데
삶은 왜 이리 무거운가.

평범이 꿈이었다. 
안정이 신앙이었다.

서로 못 본 척 해주자.
입술을 깨물었다.

내리막인 줄 알았는데 
오르막이었던가.

부서진 자들이
부러진 깃발에 기어오른다.

나쁜 마음을 먹었다.
아픈 마음을 먹었다.

거기서 뭐하세요.
하늘에 대고 소리친다.

침묵이 태양을 삼킨다.
바람은 당신만 취한다.

당신은 묶었는가, 묶였는가.
당신을 걸었는가, 버렸는가.

짐승처럼 웅크린 채 잠이 든다.
백마를 타고 오신 다더니.

Sometimes i feel like motherless child.   
이국의 노래가 광야에 흐른다.